보검재(寶城峙) 이야기
보성재는 보금재, 보검재, 보검치, 보금치라고 부르는데 지동마을 사람들은 보검재, 모산마을 사람들은 보성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보검재를 중심으로 동쪽이 지동마을이고 서쪽이 모산마을인데 현재도 화순군 춘양면과 도곡면의 경계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보검재는 보성과 나주를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육로로서 주로 벌교와 보성사람들이 1일과 6일에 장이 서는 남평장에 가기위해 보검재를 많이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동마을 앞에 주막이 있었고 고개를 막 넘어 저수지 인근에 고개를 넘나드는 행인이 쉬어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동마을 사람들은 보검재가 ‘보배 寶, 칼 劍, 재 峙’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설명을 위해 보검재등에는 백마등과 장군바위가 있으니 당연히 칼이 있어야 당연하다고 설명하면서 보검재의 이름을 강조하고 보성재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보검재에는 도둑과 강도들이 많이 있었다고 하며, 백마 등에서 백마를 타고 보검재 등의 칼을 든 장수들이 도둑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옛날에 보검재에 호랑이가 나와서 원앙리 사람인 정봉화씨가 혼자 호랑이를 잡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모산마을 사람들은 보성재 혹은 보성치라고 부르는데, 보성 원님이 나주 목사를 방문하고자 넘어온 고개라 하여 ‘보성재’라 부르기도 하고, 보성 원님이 나주 목사를 만나기 위해 재를 넘다가 재에서 잠시 쉬어 갔다고 해서 ‘보성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