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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화순고인돌 유적

세계유산 화순 고인돌 특징

세계유산 화순 고인돌 특징에대해 알려드립니다.

화순고인돌 둘러보기

세계유산 화순 고인돌유적은 1995년 12월 2일 목포대학교 이영문교수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된 유적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보검재 계곡을 따라 596기의 고인돌이 밀집분포하고 있다. 발견당시 숲속에 고인돌이 묻혀 있는 비교적 원상 그대로였고, 고인돌의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였다. 주변환경은 영산강 지류인 넓은 평야가 있는 지석천과는 불과 2km 정도 떨어진 계곡에 고인돌이 있고, 인근 마을안 뿐만 아니라 주변 평지와 구릉에도 많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국가 사적 제410호로 지정되었고, 거점 지역별로 괴바위 고인돌군(47기), 관청바위 고인돌군(190기), 달바위 고인돌군(40기), 핑매바위 고인돌군(133기), 감태바위 고인돌군(140기), 대신리 발굴지(46기) 등 군집별로 밀집 분포하고 있다.

  • 1효산리 모산마을
  • 2백제고분
  • 3괴바위 고인돌
  • 4관청바위 고인돌
  • 5월곡 2재
  • 6달바위 고인돌
  • 7보검재
  • 8팽배바위 고인돌
  • 9감태바위 고인돌
  • 10감태바위 아래 여러형식의 고인돌
  • 11대신리 고인돌
  • 12대신리 지봉마을

괴바위 지구

괴바위 고인돌지구는 고양이 형국인 괴바위 고인돌을 중심으로 47기의 고인돌이 밀집 분포되어 있는 곳이다. 괴바위로 불리는 이 고인돌은 원래 5개의 고임돌이 받치고 있는 전형적인 바둑판식고인돌이며 지형적으로 고양이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65m에 위치하고 있어 멀리서도 한눈에 바라다 보이며 평지를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길이 530cm, 폭 360cm, 두께 300cm인 초대형 덮개돌이다.

이렇게 주변에서 보이는 고인돌과는 달리 규모가 크고 잘 다듬어졌으며 약간 높은 대지상에 조성한 점은 무덤이라기보다는 제단적 성격이 강하며 주변의 고인돌은 무덤으로 사용된 경우가 많다.

관청바위 지구

관청바위 고인돌지구는 관청(官廳)일을 보았다하여 이름 붙여진 관청바위 고인돌을 중심으로 190기의 고인돌이 밀집 분포되어 있는 곳이다. 이 고인돌은 화순고인돌 유적지에서 가장 큰 군집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고인돌들은 건지산 중턱에 52기가 산기슭을 따라 규칙적으로 열 지어 분포하고 있으며 규모가 가장 큰 초대형 고인돌은 2003년 조사결과 고인돌 덮개돌 밑을 돌아가면서 받침돌이 배치되어 있고, 땅을 평탄하게 한 후 돌을 구획하여 깐 묘역시설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초대형 고인돌 덮개돌 밑을 돌아가면서 받침돌이 배치되어 있었고, 토층상 수평으로 평탄하게 조성한 점은 고인돌을 축조하기 전에 주변을 평탄하게 정지하였음 알 수 있다.

달바위지구

달바위 고인돌지구는 월곡저수지에서 보검재 방향으로 40여기가 산재되어 분포하고 있다. 가장 큰 달바위 고인돌이 한쪽에 치우쳐 있고 작은 고인돌들이 산비탈을 가로질러 열 지어 있다. 산 중턱의 비탈면에 있는 달바위 고인돌은 길이 556cm, 폭 396cm, 높이 198cm이며 고임돌이 6개 받치고 있는 전형적인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이렇게 큰 고인돌의 경우 무덤이라기보다는 혈연집단의 묘역을 상징하는 기념물이며 작은 것들은 무덤으로 쓰인 경우가 많다.

핑매바위 지구

핑매바위 고인돌지구는 춘양 대신리 지동마을에서 보검재로 올라가는 산비탈을 따라 133기가 분포되어 있다. 그 중에서 핑매바위 고인돌은 산기슭 약간 높은 대지상에 위치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인돌이다. 길이 7m, 높이 4m, 무게 200톤이 넘는 초대형 덮개돌로, 덮개돌의 아랫면을 다듬은 흔적이 뚜렷하고 그 밑에 5개의 고임돌과 일정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돌을 주워 던진다는 의미에서 핑매바위라 이름 붙여졌으며 마고할매 전설, 장군바위 전설 등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특히 고인돌 위 구멍에 왼손으로 돌을 던져 들어가면 시집가고 장가간다는 전설이 전해오기도 한다.

감태바위 지구

감태바위 채석장
감태바위는 지동마을로부터 보검재로 넘어가는 길로부터 북쪽에 위치하며 고인돌 덮개돌을 만들었던 채석장이다. 이 암벽은 길이 6m, 높이 2.5m 정도가 드러나 있는데, 암벽에는 60cm 내외로 돌결이 나 있어 채석하기에 용이한 석질을 가지고 있다. 올라가 관찰하면 튀어나온 부분을 떼어 내려다만 흔적과 떼어내려고 판 홈이 보인다. 이 홈에 단단한 돌이나 나무로 파서 지렛대나 쐐기를 박아 힘을 쓰면 쉽게 분리될 수 있다. 주변에는 많은 바위들이 덮개돌처럼 떼어진 상태로 놓여 있고 거의 분리되어 있다. 암벽 옆의 바위가 비스듬히 놓여 있는 것은 다시 옮길 것을 생각해서 채석한 후 움직여진 상태이다
감태바위 아래 여러 형식의 고인돌
감태바위 아래에 밀집 분포되어 있는 고인돌은 고인돌의 다양한 형태를 살필 수 있다. 덮개돌을 받치고 있으면서 지상에 무덤방이 드러난 탁자식 고인돌과 고임돌이 고여진 바둑판식 고인돌, 무덤방이 드러난 개석식 고인돌 등이다. 이 암벽위에는 괴석형 덮개돌이 채석한 상태로 놓여 있고 주변에 채석하여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석재들이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곳에서 덮개돌을 채석하여 바로 아래로 옮겨 고인돌을 축조하였다고 생각된다. 이 한곳에서 덮개돌의 채석과 무덤의 여러 형태 등 고인돌의 채석-축조 등의 과정을 한곳에서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산 교육장이다.
태풍으로 훼손된 감태바위 고인돌 발굴
2012년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훼손된 23호와 24호를 발굴조사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24호는 대형 판석을 사용하여 무덤방을 축조한 탁자식으로 밝혀졌으며, 23호는 개석식으로 덮개돌 밑에서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완전한 탁자식 고인돌이 복원
24호 고인돌은 발견 당시부터 원래 한쪽 벽석이 무너져 기울어진 상태였으나 한쪽 장벽과 단벽이 축조 당시의 모습대로 무덤방(석실)이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태풍의 영향으로 소나무가 넘어지면서 덮개돌이 이동되고 무덤방도 완전히 훼손되었다. 고인돌의 크기는 길이 450cm, 너비 310cm, 두께 70cm, 무게는 15톤으로 대형급에 속하며, 덮개돌 밑에는 양쪽 장벽석인 대형판석 2매와 단벽석 1매가 고인 탁자식고인돌이다. 이번에 복원된 길이 140cm, 너비 50cm, 높이 40cm의 무덤방(石室) 위에 올려 진 덮개돌은 무덤방 밖으로 1m ~ 1.7m 정도의 처마를 형성한 웅장한 모습이다.

이 고인돌은 앞으로 바둑판식 고인돌과 함께 화순고인돌유적의 대표적인 탁자식고인돌로 일반인과 학생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완형의 간돌검(石劍)이 발견
23호 덮개돌 밑에서 길이 133cm, 너비 46cm, 깊이 40cm의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무덤방은 납작한 돌을 세워 축조하였는데, 남쪽이 넓고 북쪽이 좁은 형태(소위 두광족협(頭廣足狹)이다. 무덤방 내에서 간돌검 완형(유경식석검(有莖式石劍)이 한쪽 단벽 부근에서 검의 끝이 위로 향한 채 출토되었다. 간돌검의 길이는 12.5cm, 검몸 길이는 10.5-10.6cm이며, 손잡이와 연결되는 부분 양쪽에 홈이 파여져 있다. 이런 간돌검은 손잡이를 만들어 부착하여야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이다. 간돌검은 영산강유역 고인돌 무덤방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부장유물로 지금까지 10여 점이 확인되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창과 강화지역 고인돌에서는 간돌검이 발견된 예가 없으며, 화순 고인돌에서 처음으로 완형의 간돌검이 부장유물로 출토되었다. 이는 고인돌이 당시의 무덤으로 사용되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대신리 발굴지

대신리 발굴지는 지동(못골)마을 앞에 있는 것으로 1999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 후 2008년 보호각을 씌워 유적을 보호하고 있다. 35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고 다양한 형식의 무덤방과 붉은간토기, 가락바퀴, 돌검편,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여기에서 출토된 자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목탄은 기원전 550년, 토기편은 기원전 770년으로 측정되었다. 이로 보면 2800년 전에서 2500년 전 사이에 고인돌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인돌 채석장

층리가 발달된 응회암
고인돌에 사용된 암석은 퇴적암 계통의 응회암과 안산암으로 확인되었다. 화순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화순 대신리와 효산리 지역의 암석은 데사이트질 응회암과 안산암으로 응회암에는 층리와 유동구조 등이 발달되어 있으며 춘양 대신리 채석장에서 관찰되는 유문암질 응회암에서 발달하는 절리들은 층리면에 거의 평행이거나 저각도의 경사를 갖는다. 안산암은 특징적으로 주상절리의 발달이 현저하며 그 경사각은 수직이거나 70°이상인 것들도 관찰된다. 이 암석은 규모가 큰 장방형이나 직육면체 모양의 고인돌 덮개돌로 많이 채석되었을 것이다.
마당바위 채석장
마당바위는 마당처럼 넓다하여 마당바위라 이름 붙여졌으며 화순고인돌 축조에 이용되었던 채석장이다. 고인돌이 분포된 위쪽 곳곳에 산 중턱을 따라 절리가 발달된 유문암질 응회암 암반들이 노출되어 있다. 이 암반들은 고인돌의 덮개돌을 채석하는데 천혜의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다.
관청바위 채석장
관청바위 채석장은 건지산 남쪽 중턱으로 층층으로 켠 석재 모양으로 절벽을 이루고 있다. 그 주변에 많은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데 모두 고인돌 덮개돌을 만들 수 있는 것들이다. 구전에 의하면 “어느날 보성원님이 나주목사를 방문하기 위해 고개(보검재)를 넘어와서 이곳을 지나다가 잠시 쉬었는데, 그때 마침 이곳의 한 백성이 소장(訴狀)을 올리자 원님이 즉시 처리해 주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관청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감태바위 채석장
감태바위 채석장은 갓을 쓴 사람 모습에서 감태(갓, 모자)바위라 이름 붙여진 곳이다. 덮개돌을 채석하기 위해 구멍을 판 흔적과 덮개돌을 채석하여 암벽 옆에 비스듬히 세워놓은 것도 있다. 감태바위 앞에서 가락바퀴, 민무늬토기 등 청동기시대 유물과 삼국,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와 자기가 발견되었다. 이는 오랜 동안 사람들의 소원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