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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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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출현-기원전 1200년 전

  • 고인돌의 축조 연대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출토된 유물의 연대와 형식간의 선후에서 추정하거나 자연과학적인 연대측정 자료를 응용해 시기를 파악하는 추세이다. 과학적인 분석결과와 고고학적 연구 성과로 볼 때 고인돌의 축조 연대는 기원전 12~11세기경에 축조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종전의 기원전 12세기 설에서 단군릉 발견 이후 고인돌을 단군조선과 관련지어 절대연대에 의해 기원전 4000년 후반기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이 연대는 전자상자성공명법(ESR), 열형광법(TL), 핵분열흔적법(FT) 등을 이용한 절대연대 자료를 근거로 들고 있다. 고인돌 소멸은 청동기시대 후기의 전반에 해당하는 유물의 출토로 기원전 3~2세기설이 대체로 수용되고 있는 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고인돌은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1,000년 동안 만들어진 청동기시대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고인돌 소멸-선진문화의 수용

  • 고인돌은 왜 소멸되었을까?. 고인돌의 소멸은 당시 사회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고인돌 후기의 사회는 지배계층의 등장과 외부로부터 선진문화의 수용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지배계층인 수장층의 등장은 기존의 각 지역을 배경으로 한 지배집단간의 이합집산에 의해 급격한 통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농경지 확보를 위한 전쟁에서 얻어진 소산물로, 사람들의 신분이 달라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바로 집단안의 사람들간에 지배와 피지배층으로 다양한 계층이 분화되면서 권력의 중앙 집중화가 진행되고, 한편으로는 합법적으로 정복 전쟁이 수행된다. 이런 과정에서 기존의 고인돌보다는 봉분이 있는 나무널무덤이 등장하게 된다. 이 무덤에서는 다량의 청동기가 부장되어 있으며 청동제 무기로 소속 집단을 강제적으로 제압하거나 의기류로 집단의 모든 의식 행위를 집행하는 것으로 이용되었다. 즉 정치와 제사를 관장하는 제정일치의 사회의 최고의 지배자임을 과시한 것이다. 이런 뜻에서 고인돌과는 다른 무덤을 선택하게 되었다. 다음은 선진문화의 수용이다. 선진문화는 철기문화이다. 고인돌이 축조되는 시기의 청동기는 무기류가 주를 이루고 있고, 과장되거나 커져서 의기화되는 반면에 철기는 무기보다는 농경구 등 실생활용구들을 많이 제작하게 된다. 이 철제 농경구는 석기로 하던 작업양보다는 3~4배 가량의 능률을 올릴 수 있는 도구이다. 이 농경구를 이용한 농경지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게 된다. 고인돌 축조에 따른 많은 인력 동원과 노동력의 손실은 당시 사회에서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고인돌이란 무덤의 축조보다는 농업생산에 치중한 수장층 계급에게는 더 많은 생산력이 요구되었고, 그에 잉여생산물을 축적해야 했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배경에서 고인돌 축조는 낭비이고 소모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고인돌 축조에 동원된 인력은 생산 활동에 투입되는 과정에서 많은 인원이 필요없는 나무널무덤이나 움무덤으로 변화되었던 것이다.